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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진신사리

스리랑카 정부가 공인한 부처님 진신사리

1991년 처음으로 당시 스리랑카 라만야종(Ramanna Nikaya)의 원로인 바데가마 위말라완사 스님께서 기증하신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경내 석탑에 봉안한 이후, 2014년 7월 석왕사는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석가모니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기증받았다.

석왕사가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는 수도 콜롬보의 ‘수부띠 사원’과 암베렌토타의 전통명문가 ‘뗀네꼰 가문’의 사리 각각 1과(果)씩으로 2과 모두 스리랑카 정부가 진품을 공인한 사리다.
2개의 진신사리 중 하나는 1898년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성 불탑유적에서 수습되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던 진신사리다. 이 진신사리는 영국의 정부기관인 고고학국의 책임자 알렉산더 커닝햄과 영국인 윌리엄 클랙스턴 펩페가 수습하였고, 펩페는 1898년 9월 16일 21과의 진신사리를 평소 존경해오던 스리랑카의 큰스님인 수부띠 스님께 기증하였다. 그리고 이 진신사리가 수부띠 대사원의 주지스님에게 기증될 때 사리에 대한 내용을 적은 편지가 함께 전달되었는데 현재 이 편지는 스리랑카의 중요문서로서 스리랑카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발굴 당시 진신사리는 몇 개의 사리병 속에 봉안돼 있었다. 사리병에는 석함이 들어 있었고, 그 석함에는 브라미어(산스끄리트어의 뿌리)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매장사리, 이 위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배우자, 자식, 형제자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만든 것이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세계학계는 사리함의 문장이 <열반경>에 나오는 “…카필라성 출신의 석가족은 가장 거룩한 성인의 진신을 모실 불탑을 세우고 그 거룩함에 걸맞는 엄숙한 의식도 준비했다 …”는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카필라성에서 발굴된 사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라고 인정하고 있다. 석왕사에 봉안되는 사리가 바로 이 사리 중 1과(果)이다.
또 하나의 진신사리는 스리랑카의 남쪽 지역에 위치했던 루후누 왕국의 건국시기인 서기전 2세기부터 전해온 것으로 남쪽 지역의 도시인 암베렌토타 일원을 다스리던 뗀네꼰 이라는 명문가문에서 400여 년간 대대로 모셔온 진신사리이다. 이 가문은 루후누 왕국 때부터 전해오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1625년부터 가보로 봉안했다. 이후 400여 년 동안 이 가문에서는 매년 가문의 후계자가 집전관이 되어 지역 내에 있는 갈레(Galle) 사원에서 진신사리 예경행사를 봉행하고 있다.

석왕사에서는 매년 천상과 지상이 상통하는 날인 음력 7월 7일, 칠월칠석부터 백중까지의 기간동안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삼존불·육보살상(三尊佛·六菩薩像)

삼존불·육보살상은 조성 기간 총 5년이 소요되었고, 좌대를 포함하여 높이가 13자나 되는 국내 최대의 노천불상이었으나 현재는 2012년 개금불사를 봉행하며 천상법당(天上法堂)안에 모셔져 있다.
삼존불은 불기 2533년 11월 11일 봉안하였고, 여섯 보살상은 불기 2534년 11월 1일 지장경 산림대법회 회향일을 기해 점안하였다.
우리가 부처님을 바라보았을 때, 가운데에 계신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왼쪽이 아미타 부처님, 오른쪽이 약사여래 부처님이다. 아미타 부처님은 영원한 수명과 무한한 광명을 보장해 주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영원한 부처님이라는 뜻인데, 서방정토를 주재하면서 뭇중생들에게 안락과 수명을 보장해 주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이다. 약사여래는 사람들의 온갖 아픔을 고쳐주시고 오래 살도록 해주며, 재난과 근심을 없애주시고 옷과 음식을 많이 주시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부처님이다. 그리고 다른 불상과는 달리 손에 약이 든 약그릇을 들고 있다.
육보살상은 우리가 바라보았을 때 왼쪽으로부터 대세지, 관음, 보현, 문수, 일광, 지장보살 순으로 계신다. 대세지 보살님은 지혜의 밝은 빛이 모든 중생에게 두루 비치어 위없는 힘을 얻게 해주는 분이시다. 자세히 보면 머리의 보관에 보배병 문양이 들어있다.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비추어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를 여의게 하고 무한한 힘을 주므로 대세지라 하는 것이다. 관음보살님은 중생의 모든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그 괴로움을 없애준다는 뜻에서 관세음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손에는 감로수의 정병을 지니시고, 머리의 보관 중에는 아미타 부처님의 화신 즉 화불(化佛)을 나타내고 있다. 보현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덕(理德), 정덕(定德), 행덕(行德)을 맡고 있는 보살님으로 유명하다. 이 3덕 가운데 으뜸은 행덕이다. 손에는 연꽃을 쥐고 있다. 문수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으시는 보살이시다. 보현보살님이 대행(大行)의 상징이라면 문수보살님은 대지(大智)의 상징이다. 손에는 서지(書誌)를 들고 있다. 일광보살님은 월광보살님과 함께 약사여래불을 협시하는 보살이다. 손에는 태양을 들고 있다. 특히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인도하여 지장보살님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6도 윤회에 끝없이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주고,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보살이시다. 또한 중생제도를 위해 영원히 보살로 남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지옥문전에서 대비(大悲)의 눈물로써 교화하시기도 한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보배구슬과 석장을 짚고 있다.
이처럼 중생 구제에 힘쓰시는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우리 불자님들은 절에 올 때마다 꼭 들리셔서 예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초전법륜상(初轉法輪像)

부처님께서는 정각 직후 7일 동안 보리수와 그 둘레에 머물면서 연기의 법을 명상하셨다. 최고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은 이제 더 추구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깨달아 얻은 최고의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 그들이 과연 알아듣고 해탈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부처님은 범천(Brahma)의 권청을 받아들여 설법을 결심하였다.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에 이르기 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가 않았다. 누구에게 이 법을 설할까. 부처님은 출가후 처음 찾아갔던 두 스승을 생각했다. 그들은 이 법을 이해할 수 있으련만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 누가 이 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진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법을 듣는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주관적 편견이 문제였다. 많은 생각 끝에 부처님은 예전에 함께 고생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마가다에서 함께 수행했던 동료였으나, 고타마 사문이 고행을 포기한 일을 가지고 그를 경멸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약 350킬로나 되는 녹야원으로 그들을 찾아갔다. 이는 부처님께서 첫 설법에 대해서 얼마나 필사적이었는가를 느끼게 한다. 부처님은 그들을 상대로 첫 가르침을 설하셨다. 이것이 바로 초전법륜이다.
초전법륜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제1부는 중도(中道)의 설법으로 쾌락주의와 고행주의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에 의해 통찰과 인식과 깨달음의 열반에 이른다. 이 중도는 팔정도(八正道)로서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즉 불교의 중도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철저히 비판 배격하고, 한걸음 나아가 독자적인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초전법륜의 제2부는 사성제로서 이는 태자의 출가수행의 동기가 된 인간고와 그 해결을 4단계로 고찰한 것으로, 고뇌를 극복하는 방법도 중도로서 제시한 팔정도와 같은 것이다.
45년에 걸친 부처님의 종교활동은 이곳을 기점으로 시작하여 이후의 모든 불교의 발전은 이 초전법륜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석왕사에서는 부처님의 최초 설법, 즉 초전법륜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높이 숭양하고 초전법륜의 현장을 감동적으로 재현키 위해 불기2528년(1984년) 4월 15일에 ‘부처님과 다섯 비구’상을 조성·봉안한 것이다.

스리랑카 부처님상

높이 2m, 무게 1.5t의 이 불상은 스리랑카 정부가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이사장인 영담스님께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를 지원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석왕사에 기증한 것이다. 이 불상은 스리랑카에서 보석으로 사용되는 광물인 돌로마이트로 만들어졌다.
스리랑카 정부가 석왕사에 불상을 기증, 이 불상은 배로 운반돼 2008년 4월 19일 부처님오신날 석왕사 법당에서 봉안법회가 열렸다. 이날 스리랑카 부처님을 모시고 양국의 불교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국가 차원에서 더 많은 교류와 교통이 이어져 화합과 상생이 실현되는 세계평화를 서원했다.


미얀마 부처님상

육화전 안에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석왕사 영담스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미얀마근로자들이 기증한 미얀마부처님(1998)이 계신다.

오백나한상

2008년 10월 7일 석왕사 나한전에 오백 나한이 점안되었습니다. 나한(羅漢)은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인 아라한의 줄임말이다.
나한은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중생을 제도하시는 스승으로 널리 중생의 원을 쫓아 그 뜻을 이루게 해주시는 성자이십니다. 나한은 온 세계를 가득 채워 밝게 비추고 중생의 정성 가득한 소원이 이루어져 언제 어디서나 그 모습을 나투어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 깨우쳐 원만한 지혜덕상을 갖추어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일심으로 제 마음에 새기어 입으로는 십육성중이나 제대성중의 명호를 일념으로 칭념하게 되면, 기도의 정성에 성현이 감응하시어 반드시 어떤 불가사의한 모습을 현전이나 꿈속에 나투어 소원을 이루게 합니다.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들은 성자를 가리킵니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보살’,‘나한’은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각자(覺者)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사람들은 나한 역시 여러 불보살님처럼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보살과 다른 점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나한들은 대개 실존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 법회에서 나한들에게 부촉하기를 열반에 들어 열반락을 즐기지 말고 선정에 들어 있으면서도 천상이나 인간들의 공양에 응하여 복을 짓는 밭이 되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나한은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중생을 제도하시는 스승으로 널리 중생의 원을 쫓아 그 뜻을 이루게 해주시는 성자입니다.

팔만사천불

한 가족이 한 부처님 모시기 전개에 따라 팔만사천불을 조성하였으며 육화전에 모셔져 있다.

수자지장

수자(水子)라는 말의 뜻은 출산 직후의 아기, 혹은 태아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한 인간이 수태되어 출산까지를 ‘태내 5위’라 하여 수정 그 자체로부터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불교는 수태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낙태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삶을 빼앗는 살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또한 유산이나 낙태를 죄악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수자공양이 존재하는 것이고, 수자공양은 곧 생명의 존엄성과 외경심을 동시에 지니는 합리적인 의식인 것이다.
석왕사에서는 명부전에 수자영가의 안착을 위해 공양을 올려, 많은 관심과 참여로 깊은 참회와 망령을 위한 천도와 더불어 생명존중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고자 수자지장을 조성하였다.

석왕사 괘불

석왕사 통일 괘불은 쌍계사 괘불을 모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으며 2013년 10월 13일 봉안하였습니다.
쌍계사 괘불과 마찬가지로 석가모니불을 보신불로, 삼처전심 가운데 염화시중을 나툰 선종 사찰의 괘불입니다. 원만한 상호와 건장한 체구, 훤출한 의습, 조화있는 장엄을 갖춘 수작입니다.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몸에는 화려한 영락장식을 착용하였으며 원형의 두광을 갖춘 부처님은 두 손으로 연꽃을 받쳐들고 연화좌를 밟고 정면을 향해 서계십니다.

괘불은 탱화(幀畵)의 일종으로 야외 법회 때 쓰는 의식용 불화를 말합니다. 큰 행사, 초파일같이 대중이 많이 모이는 날 야외법회를 할 때 괘불을 모셔놓고 법회를 봉행하면 바로 그 자리가 영산회상이 됩니다.
한 사찰에서 괘불을 조성하는 일은 사찰의 원력이 총동원 되는 큰 불사(佛事)입니다. 시주에서 조성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불사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므로 괘불을 모시고 법회를 봉행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공존의 마당이며 화해의 자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석왕사에서 괘불을 모시는 날은 백중날(7.15) 개산대제 회향 및 중양절(음9.9)입니다.
*석왕사 괘불의 크기 : 가로 6m 20cm, 높이 10m

와불

불기 2549년(2005년) 조성되었다.

마애석불

석왕사 팔만대장경

석왕사는 초조 고려대장경 판각 1,000년이 되는 2011년을 기념하여 세계적 문화재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원본 그대로 다시 새겨 모시는 복각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고려시대 3차례 조성된 팔만대장경은 종교적 의미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평안과 복덕구족’은 물론 ‘전쟁 반대와 평화 염원’, ‘고난극복을 위한 화합과 헌신’이라는 인류의 이상적 가치실현을 앞서 실천했다는 점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민족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대장경을 새롭게 조성하여 대장경의 참뜻을 오늘에 되살리고 전쟁과 차별 없이 더불어 사는 지구촌을 만드는데 우리 불교신자는 물론 우리 민족 전체가 앞장서자는 의미에서 석왕사에서는 팔만대장경을 조성하였습니다.
1천년만에 다시 이루어지는 석왕사 팔만대장경은 세계 불교사에서 6번째로 조성되는 목판 대장경이자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더불어 현존하는 2번째 목판 대장경이 됩니다.

2007

‧해인사 팔만대장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6월)하고 고려대장경 천년 기념의 해(2011년)를 준비하며 석왕사 중창 30주년(10월 11일)에
  팔만대장경 전체 원형 복각발원 서원
‧석왕사 조실 고산혜원대종사께서 주지 영담스님께 석왕사 창건 취지에 맞게 팔만대장경을 복각토록 지시

2008

‧석왕사 대장경 판각불사 자료 준비
‧팔만대장경 인경 자료 수집
‧경전별 자료 정리
‧산벚나무 산지 찾기(미얀마, 중국 운남 경제지역 집단군락지 확인)
‧목재 실험(소금물 삶기, 건조, 방부처리, 함수율 유지 실험)
‧인경본 스캔, 구양순체 폰트체 정리 및 도면작업

2009

‧작업장 준비(1월, 중국 산동성 위해시 석도 소재 - 장보고 장군이 건립한 사찰 적산법화원 인근 지역)
‧판각 실험(3월)
‧반야심경 판각 시작 (10월)

2010

‧금강경 판각(9장-17면)
‧법화경 판각(116장-227면)
‧화엄경 판각 시작

2011

‧소장용 소형반야심경 판각
‧추사체 반야심경 판각
‧부모은중경 판각(11장-22면)
‧화엄경 판각(801장-1557면)
‧국제도서전에 석왕사 판각경전 전시, 인경작업 시연(6월17일)
‧법전 종정예하께 팔만대장경 복각 진행과정 보고, 반야심경 봉정(8월13일)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에 복각본 반야심경, 금강경 각 1질 기증(9월)
‧‘2011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남북공동판각 기념법회(10월19일. 반야심경,금강경 북한 수각경판 봉정 : 해인사, 남해 화방사, 강화 선원사, 석왕사)
‧아미타경 판각(4장)

2012

‧복각발원 1차 철인기도 입재
‧약사경 판각(8장)
‧백유경 판각(33장)
‧법구경 판각(28장)
‧천수경 판각(14장)
‧능엄경 판각(37장)

2013

‧팔만대장경 본경전 제1권 대반야경부터 판각 시작
‧석왕사 장경전에 경판 봉안 시작 (10월 12일)

2014

‧복원 실험 판각 종료
‧석왕사 판각장 설치 및 본 경전 판각 시작

2015

‧복각발원 1차 천일기도 회향(7월 11일)
‧복각발원 2차 천일기도 입재(7월 12일)
‧지장보살본원경 판각 시작
‧천상법당에 주요경전 봉안(7월 16일)
‧7월 말 현재 팔만대장경 복각 완성수:4,461장

2018

‧복각발원 2차 천일기도 회향(4월 6일)